일공이 20기(또는 2차 10기)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20년이면 한 아이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나름 유서 있는 장학생 선발 시험이었다. 일공이 끝난 뒤로 일공학원 홈페이지에서 관련된 모든 정보를 삭제하였기에 남아있는 자료라곤 한 때는 학원생들이었던 출신들이 알음알음 갖고 있는 서류나 사진이 전부일 것이다. 학원 앞의 유리창에 큰 대자보를 붙여놓고 "이번에도 일공학원이 해냈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합격자들의 명단(이름과 고등학교)를 공개했었다. 16기까지는 학원을 다닌 합격자의 학교, 학과, 출신 고등학교를 모두 기재해 놓았으나 지금은 글이 삭제되 읽을 수 없다.
16기 선발은 이례적으로 도쿄대학교가 7명을 선발하겠다고 내걸었으나, 4등이 사임하고 서울대학교 의예과에 진학하고 7등이 도쿄대는 수학과를 갈 수 없다는 이유로 오사카대학교를 지원했다. 그런 탓에 7명 선발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5명이 도쿄대에 진학하는데 그쳤다. 한번 내정을 받은 상태에서 사임을 해도 그 인원이 밑의 등수에 내려오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8등을 했던 학생이 도쿄대에 진학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비 번호와 같은 구제책이 없다는게 얼마나 일공이 구시대적으로 학생을 선발했는지 말해주는 셈이다. 17기 때도 7명을 뽑을까하는 기대감이 수험생들사이 있었지만, 도쿄대측에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던건지 예전처럼 5명 선발이었다. 7등을 했던 동기가 혹여나 도쿄대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많이 기대했었으나, 도쿄대의 방침 전환으로 많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또 16기 때까지는 농학부의 수의학과가 지원가능했다고 전해진다.
15기 때는 아주 큰 사건이 있었다. 여의도 중학교에서 치루는 6월 EJU 시험을 경희대 예비교육을 받고 있던 모든 학생이 치뤘다고 한다. 도쿄대학교에서 예비 교육 때 내정 받은 학생들에게 내건 EJU 7할 권장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권장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EJU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을 치뤘다고 한다. 당연히 11월에 있을 시험은 등록도 해놓지 않았다. 이는 수험료 5만원을 바닥에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15기 도쿄대에 진학할 예정이던 학생 중에 3명이 3과목 7할이란 기준을 넘지 못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으나, 갑자기 도쿄대측에서 말을 바꾸어 7할을 넘지 못한 학생들은 받지 않겠다는 막무가내식의 조건을 내걸었다. 11월 시험을 등록하는 기간이 7월이고, 성적 공개가 8월이기 때문에 15기 선배들은 2차 시험을 등록도 하지 않았다. 이미정 선생님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도쿄대의 말 바꾸기에 3명의 학생이 타 대학에 진학했다. 그래서 도쿄대학교 15기 선배는 2명밖에 없다. 경희대 예비교육을 받을 때 교육 프로그램의 총괄 책임자는 국제교육원 일본어 강사로 재직하고 계셨던 이미정 강사님이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예비교육을 끝내고 한번 회기역까지 찾아뵜었다. 그때 가졌던 술자리에서 듣기로는, 유학생관리과에 있는 후쿠다라는 여성이 말을 바꿔치는 교묘한 수를 쓰는 탓에 15기 선배들이 준비도 안된 채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말씀하셨다. 후쿠다씨는 처음 일본에 도일한 날 우리 5명을 안내해주며 케이오 이노카시라선(京王井の頭線)의 코마바토다이마에(駒場東大前)역에서 파스모 교통카드를 구입하는 법을 알려줬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때 보았을 때는 되게 차분하고 침착하신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후쿠다씨에 대한 나의 기억과 상충하며 일본인에게 흔히 옅볼 수 있는 타테마에와 혼네의 간극을 뼈가 저릴만큼 뇌리에 새겼다.
이 일을 계기로 16기 선배들은 EJU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성적 기준은 변함없이 7할이었다. 선배들 얘기로는 5명 전원 1차 시험을 통과했다고 한다. 물리공학과 16기 선배가 그때 공부했던 자료들을 필자와 동기였던 전자정보과 친구에게 전달했다. 17기 때는 더욱 허들이 높아져, 7할에서 8할로 올라갔으며 또한 9할 권장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 사비 유학생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평균적인 EJU 성적을 감안해 이 정도 성적을 내정을 받은 학생들에게 요구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교토대학교는 16기까지 아무런 입학 조건을 내걸지 않았으나, 17기 때부터 갑작스럽게 공학부에서 받는 학과를 줄이고 학생수를 제한하는 것과 동시에, EJU 최저를 전과목 9할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이만큼 공부해두지 않으면 이 학교에서 수학할만한 학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니 각오하라는 대학측의 조용한 선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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